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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헬프 개봉 당시 미국흑인여성역사학자협회(ABWH)가 공식 성명을 내며 정면 비판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더 헬프를 오랫동안 그냥 따뜻한 성장 드라마로 기억하고 있었던 터라, 감동과 씁쓸함이 묘하게 교차했습니다.

백인 시선으로 재단된 흑인 서사
더 헬프는 인종차별을 용감하게 고발한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ABWH 성명문을 확인하고 나서는 그 평가가 꽤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명문은 이 영화가 이른바 '백인구원자 서사(White Savior Narrative)'를 재생산한다고 명시적으로 지적합니다. 백인구원자 서사란 흑인 등 소수자가 겪는 고통이 결국 백인 주인공의 성장과 용기를 증명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스키터라는 백인 작가 지망생이 흑인 가사도우미들의 목소리를 '대신' 세상에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해 뉴욕으로 떠난다는 이 영화의 뼈대가 정확히 그 구조 위에 놓여 있습니다.
영화를 다시 봤을 때 가장 마음이 쓰였던 대목은 에이블린이 처음 입을 열기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그 결단이 에이블린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스키터가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으로 그려집니다. 1960년대 미시시피주 잭슨은 인종 분리법(짐 크로 법, Jim Crow Laws)이 여전히 유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짐 크로 법이란 1877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 남부 주에서 흑백 분리를 법적으로 강제했던 일련의 주법들을 가리킵니다. 그 법 아래서 흑인 여성들이 실제로 감수해야 했던 성희롱 피해나 민권운동 참여 같은 현실은 영화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은 스키터의 성장 서사를 완성하는 배경으로 기능하고, 그게 ABWH가 정면으로 반박한 지점이기도 합니다(출처: 미국흑인여성역사학자협회(ABWH)).
더불어 작가 캐스린 스토킷이 실제로 알고 지내던 가사도우미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확인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이는 자신의 이야기가 허락 없이 쓰였다고 주장했고, 법정까지 갔지만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습니다. 소설이 실화적 소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소송은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니라 누가 누구의 이야기를 '소유'할 수 있는가라는 재현 윤리(Ethics of Representation)에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재현 윤리란 특정 집단의 경험을 외부인이 서사화할 때 발생하는 권력관계와 책임의 문제를 뜻합니다.
- ABWH는 영화가 1960년대 흑인 여성의 실제 민권운동 참여를 거의 삭제했다고 지적
- 흑인 가사도우미들의 이야기가 백인 주인공의 성장 서사를 위한 소재로 기능
- 원작 소설 작가 캐스린 스토킷은 실제 가사도우미에게 소송을 당했으나 공소시효 만료로 기각
- 인종 분리법 하에서 흑인 여성들이 감수한 실질적 위험이 영화에서 축소되어 그려짐
감동과 불편함 사이, 내린 결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스크린에서 발휘하는 힘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올라 데이비스와 옥타비아 스펜서의 연기는 제가 다시 봐도 압도적이었습니다. 특히 비올라 데이비스가 에이블린으로 연기한 장면들은, 각본이 그 캐릭터에게 충분한 서사 공간을 주지 않았음에도 배우 스스로 그 공간을 채워 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옥타비아 스펜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실제로 수상했습니다(출처: 아카데미(AMPAS)).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대중 친화적인 방식으로 스크린에 올렸다는 점은, 영화가 기여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이번에 확인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영화라도, 누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짰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된다는 것. 포지셔널리티(Positionality)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인종, 성별, 계층)가 서사 자체를 구조적으로 규정한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스키터는 백인이고, 원작 소설을 쓴 캐스린 스토킷도 백인입니다. 그 포지셔널리티가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놓을지를 이미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는 인종차별에 맞선 용기 있는 연대의 이야기로 소개되지만, 성명문 한 편을 읽고 나면 그 감동의 결이 조금 달라질수 있습니다. 틀렸다거나 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오히려 이 불편함을 안고 보는 것이 더 정직한 감상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받았던 장면들을 무효화할 필요는 없지만, 그 감동이 누구의 시선 위에서 설계된 것인지를 함께 묻는 것이 이 영화를 제대로 보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결론
감동과 불편함이 동시에 남는 영화라는 게 더 헬프에 대한 제 가장 솔직한 결론입니다. 비올라 데이비스의 연기는 여전히 깊고, 인종 분리법 시절 잭슨이 품었던 숨 막히는 긴장감은 스크린을 통해서도 느껴집니다. 하지만 ABWH 성명문을 읽고 나서는 그 감동의 출처를 좀 더 냉정하게 보게 됩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흑인 여성들이 아니라 백인 작가 지망생의 성장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성명문을 읽어보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거나 다시 볼 예정이라면, 스키터의 시선이 아니라 에이블린과 미니의 시선에 의식적으로 머물러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