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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하루하루 늘 같은 일이 반복되면 가끔 멍하니 딴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이상하게 이 영화가 떠오릅니다.
TV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당시 월터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하고 싶은 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당시 제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월터 미티는 라이프 잡지에서 사진 원본을 관리하는 일을 16년째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고, 마음에 두고 있는 동료 셰릴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위험한 상황에 뛰어들기도 하고,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멋진 모습을 상상합니다. 현실에서는 조용하기만 한 사람이 상상 속에서는 못 하는 게 없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금 웃기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 저런 곳에 가봐야지.'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은 정말 쉽게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막상 움직이려고 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생기고, 시간도 없고, 괜히 겁도 납니다. 그러다 보면 또 다음으로 미루게 됩니다. 월터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사진 한 장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회사에서 라이프 잡지의 마지막 인쇄본을 준비하던 중 문제가 생깁니다.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마지막 표지에 사용할 사진을 보내왔는데, 정작 중요한 25번 네거티브가 사라져버린 겁니다.
사진을 찾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 월터는 평소와 달리 직접 숀을 찾아 나서기로 합니다. 그런데 숀이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연락도 잘 되지 않고, 한곳에 오래 머무는 사람도 아닙니다.
월터는 사진에 남아 있는 작은 단서를 따라 그린란드로 향하고, 다시 아이슬란드로 이동합니다. 그렇게 평생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점점 더 먼 곳으로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월터가 갑자기 용감한 사람이 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면서도 무섭고, 당황하기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갑니다. 상상으로만 끝나던 일이 이번에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가만히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그런데 저는 멋진 풍경보다 월터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사람이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갑니다.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직접 해보기 시작한 겁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 저도 제 일상을 한번 돌아보게 됐습니다. 회사 다니고, 집에 돌아오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또 다음 날 출근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미뤄둔 일이 하나둘씩 생각났습니다.
그렇다고 월터처럼 세계여행을 떠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꼭 그렇게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주말에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보거나, 평소 관심만 갖고 있던 걸 한번 시작해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상상만 하던 사람이 한 걸음 내디뎠다
월터가 숀을 찾아다니는 동안 겪은 일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의 월터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상상 속에서만 멋진 사람이었던 그가 어느새 실제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여러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숀을 만나게 됐을 때는 사진 한 장을 찾는 것보다 이미 더 큰 걸 얻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달라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작은 계기 하나를 통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야기라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월터처럼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일이 모두에게 하나쯤은 있을 것 같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것일수 있고, 세계 영행을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작은 일일 수도 있을겁니다.
상상하면서 잠깐 행복해지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일이니까요. 다만 가끔은 그 상상 속에만 머물지 말고 현실에서 한 걸음 정도는 내디뎌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월터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