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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아서 플렉, 공감과 폭력, 사회적 고립

옴니버스로그 2026. 10. 3. 22:51

목차


    2019년 개봉한 <조커>는 배트맨의 유명한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습니다.토드 필립스 감독은 광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아서 플렉이 고담시의 무관심과 개인적인 좌절 속에서 점점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저는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오히려 ‘조커’보다 그 이름 뒤에 있던 ‘아서’라는 사람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커

    아서 플렉, 웃음 뒤에 감춰진 사람

    우리는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들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웃는 사람은 즐거운 사람이고, 무표정한 사람은 무언가 불만이 있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짐작했습니다. <조커>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아서 플렉은 가성웃음증(Pseudobulbar Affect)을 앓고 있습니다. 가성웃음증이란 감정과 무관하게 웃음이나 울음이 통제되지 않고 터져 나오는 신경학적 증상을 말합니다. 즐겁지 않아도, 심지어 두렵거나 긴장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먼저 나옵니다. 아서는 이 증상 때문에 지하철에서도, 직장에서도 계속 오해를 받습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인상 깊었던 건 영화가 이걸 단순한 캐릭터의 특징으로만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서가 사람과 멀어지는 과정,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마다 이 웃음이 먼저 등장합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은 그 상황이 얼마나 가혹한 순간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홀로 거울 앞에 서서 손으로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어떻게든 웃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의 모습처럼도 보이고, 웃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낯선 감각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도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두 번째 볼 때 처음보다 훨씬 오래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 가성웃음증(Pseudobulbar Affect): 감정과 무관하게 웃음·울음이 통제되지 않는 신경학적 증상
    • 아서의 웃음은 단순 특이한 설정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의 직접적 원인으로 기능
    • 대사 없이 장면으로 외로움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이 영화 전반에 일관되게 적용됨
    요약: 아서의 가성웃음증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그가 사회와 단절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장치입니다.

     

    공감과 폭력 사이, 영화가 놓은 불편한 경계

    일반적인 악당 중심 영화는 선과 악을 비교적 명확하게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그러니까 응징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제 경험상 <조커>는 그 구도를 처음부터 거부합니다. 보는 내내 아서가 불쌍하다는 감정과 이건 아니라는 판단이 동시에 들었고, 그 두 가지가 쉽게 나뉘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아서의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꽤 세밀하게 따라갑니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지하철 사건을 계기로 고담시의 분노한 군중이 그를 상징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감독 토드 필립스는 아서가 사회적 단절 상태에서 조커라는 인물로 향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IMDb, Joker(2019)).

    저는 이 영화에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는 관객과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이 나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봅니다. 카타르시스란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경험을 의미하는데, 아서가 사회의 무관심에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에서 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볼 때 제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서가 외면받고 무시당했던 상황에 공감하는 것과 그가 저지른 폭력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영화는 이 둘을 하나로 묶지도, 깔끔하게 분리하지도 않습니다. 그 불편한 경계에 관객을 계속 머물게 하는 것이 <조커>의 가장 의도적인 선택처럼 느껴졌습니다.

     

    요약: <조커>는 아서에 대한 연민과 그의 폭력 사이에서 관객이 쉽게 한쪽으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 영화입니다.

     

    사회적 고립이 만든 상징, 그리고 미디어

    영화 후반부에서 아서는 머레이 프랭클린의 토크쇼에 출연합니다. 오랫동안 TV 속 머레이를 동경했고, 언젠가 사람들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무대에 섭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서가 바라던 것이 인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니라, 존재를 알아봐 주길 원했던 것 같았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아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방송을 타면서 고담시 전체의 서사로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서를 조롱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자신들의 분노를 대신 표현해 주는 상징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이라는 현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미디어 프레이밍이란 언론이나 방송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어떤 맥락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인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조커>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1976)와 <킹 오브 코미디>(1982)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맥락에서입니다. 두 작품 모두 소외된 인물이 대중과 미디어를 향한 욕망이 뒤틀리는 과정을 다루는데, <조커> 역시 이런 흐름과 닮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계단 춤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라가 아서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순간들, 그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들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서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 가는지, 그 과정이 뚜렷한 답 없이 끝까지 지켜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요약: 아서의 이야기는 미디어 프레이밍을 통해 개인의 고립에서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되며, 영화는 그 과정이 어떻게 사회 전체로 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

    <조커>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아서 플렉이라는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에 이르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이 있었느냐였습니다. 영화는 그 순간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어떤 판단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이 영화를 몇 년이 지나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조커>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아서의 표정에 집중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