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 없이 넷플릭스 신작 탭을 열었다가 낯선 제목 하나에 스크롤이 멈췄습니다. 배우 얼굴을 확인하니 의 그레타 리였고, 감독 크레딧에는 시리즈의 루이 르테리에 이름이 보였습니다. 액션 블록버스터와 밀실극이라는 조합이 영 어울리지 않아 반신반의하며 틀었는데, 초반 20분 만에 리모컨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밀실극이 작동하는 방식 — 뺄셈의 공포이 영화는 가장 단순한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평범한 네 식구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문이 사라져 있다는 것. 잠긴 게 아니라 아예 벽처럼 막혀버린 상태입니다. 창문도, 외벽도 꿈쩍하지 않고, 전화와 인터넷도 완전히 끊깁니다.여기서 이 작품이 선택한 방식은 클로즈드 서킷(Closed Circuit) 구조입니다. 클로즈드 서킷이란 외부와의 통로가 완전히 차단된 채 한정된..
1966년 케이프타운의 디스트릭트6는 백인 거주 지역으로 지정됐고, 이후 6만 명이 넘는 주민이 강제이주를 겪었습니다. 이런 실제 역사가 이라는 영화의 제목과 설정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걸, 저는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외계인 액션 영화인 줄로만 알았던 이 작품이, 알고 나니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큐멘터리 형식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익숙함영화는 시작부터 뉴스 인터뷰, 현장 카메라, 전문가 코멘트를 뒤섞은 독특한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른바 모큐멘터리(Mockumentary) 방식인데, 여기서 모큐멘터리란 픽션임에도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하는 형식을 가리킵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이상한 익숙함이었습니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장면인데도 마치..
솔직히 이번 극장판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내가 짱구를 집에서 거의 틀지 못하게 하는 터라 저도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어쩌다 다시 본 이 이렇게 마음에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용 만화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두 딸을 키우는 지금의 저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노스탤지어가 어른을 무너뜨리는 방식악당 켄과 차코가 어른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단순한 마법이 아닙니다. 그들은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무기로 씁니다. 노스탤지어란 지나간 시절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을 뜻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것이 현재의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클수록 더 강하게 작동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20세기 박람회에 모인 어른들은 옛날 TV 프로그램, 장난감, 거리 풍경 앞에서 점점 현재를 잊어버립니다. 이게 영화 ..
고독한 미식가 드라마 시리즈는 2012년부터 10시즌 넘게 이어지며 일본 심야 드라마 중 손꼽히는 장수 콘텐츠가 됐습니다. 그 고로가 처음으로 극장 스크린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제 첫 반응은 "이걸 굳이 영화로 만들어야 했나"였습니다. 드라마의 힘이 바로 그 소박한 크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거제도까지: 극장판이 선택한 구조이번 극장판의 출발점은 파리입니다.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옛 연인의 딸을 만나러 프랑스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본인 노인 마츠오 이치로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던 '잇짱지로'라는 국물 요리의 재료를 찾아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잇짱지루란 첫 번째로 우려낸 육수, 즉 다시의 원형에 해당하는 국물을 가리킵니다. 쉽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목도 줄거리도 전혀 몰랐습니다. 크리스 헴스워스가 나온다는 말 한 마디에 재생 버튼을 눌렀고, 보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숲속 별장, 좀비, 생존이라는 익숙한 조합 뒤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는 영화, 입니다. 공포 클리셰, 이번엔 일부러 쓴 겁니다포스터만 보면 완전히 낚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외딴 숲속 별장, 다섯 명의 젊은 친구들, 지하실에서 발견한 수상한 물건. 여기까지는 어딘가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슬래셔 무비(Slasher Movie) 공식 그대로입니다. 여기서 슬래셔 무비란 살인마나 괴물이 등장해 주인공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방식의 서브 장르로, 1970~80년대부터 공포영화의 주류 문법으로 자리 잡은 형식입니다..
저는 야구를 좋아하고 취미로 사회인야구도 하고 있어서 메이저리그 경기 역시 자주 챙겨보는 편입니다. 올해 TV를 보다가 아이오와주 다이어스빌에서 열린 ‘MLB at Field of Dreams’ 경기를 보게 됐습니다. 2021년 처음 시작된 이 경기는 2022년에 이어 올해 다시 열렸고, 2026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그라운드에 올랐습니다. 영화 (원제 )의 촬영지에서 실제 메이저리그 경기가 열리는 모습을 보니 야구팬으로서 꽤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작 이때까지 영화 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 경기를 보면서 이참에 영화도 한번 보자는 마음이 생겨 찾아봤습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경기를 본 게 아니라, 현실의 야구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게 된 셈입니다. 옥수수밭에 야구장을 만든 남자레이..
금요일 저녁 유치원 교사인 아내가 퇴근 후 추천해 준 영화가 있는데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을 매일 보는 직업이라 그런지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OST 중에서도 '바람의 멜로디'를 특히 좋아한다면서, 그 곡 나올 때 준비하라고 미리 귀뜸까지 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을 봤는데, 그냥 닭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던 것과 다르게, 뭔가 떠나보내는 마음이 눈에 밟혔습니다. 양계장을 나온 잎싹, 오리알을 품다주인공 잎싹은 좁은 양계장에서 매일 알만 낳는 삶을 살고있었습니다. 자기가 낳은 알은 품어보지도 못한 채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양계장을 탈출합니다. 양계장은 탈출했지만 마당에 있는 다른 동..
직장에서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하루하루 늘 같은 일이 반복되면 가끔 멍하니 딴생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이상하게 이 영화가 떠오릅니다. TV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당시 월터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하고 싶은 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당시 제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입니다.상상 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월터 미티는 라이프 잡지에서 사진 원본을 관리하는 일을 16년째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도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고, 마음에 두고 있는 동료 셰릴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
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가 되니 요즘은 예전과 조금 다른 눈으로 아이를 보게 됩니다. 어릴 때야 기분이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울고, 화가 나면 바로 티가 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표정 하나만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 기분이 어떤지 물어봐도 그냥 괜찮다고 할 때가 있고,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혼자 방에 들어가 있는 날도 있습니다. 이런 딸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영화 이 떠올랐습니다. 영화는 사람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배경으로, 기쁨·슬픔·버럭·까칠·소심이라는 다섯 캐릭터가 라일리의 하루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감정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영화를 보다 보면 감정들이 정말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기쁨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라일리를 행복하게 만..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요? 내가 아끼던 장난감 로봇이 내가 없을 때 몰래 움직이지는 않을까. 내가 좋아하던 인형들이 혼자 말을 하지는 않을까. 어릴 때는 그저 순수하고 재미있는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995년 가 처음 개봉했을 때,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 나만 이런 상상을 해본 게 아니었구나!' 그날 이후로 벌써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는 어느덧 5편째를 맞이했습니다.무더운 여름날, 두 딸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서 를 마주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그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장난감이 움직인다면? 누구나 ..